비전을 말하라 - 10.3 전당대회에 부쳐, 김부겸
10.3 전당대회는 당의 운명이 걸린 기로입니다. 세 가지 정도가 중요합니다. 크게는 민주당의 2012년 대선과 총선 전략의 밑그림이 나와야 합니다. 작게는 연합정치에 대한 기본 입장과 경로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향후 민주당의 성격 문제도 짚어져야 합니다. 물론 이 셋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전당대회에 이런 얘기가 무르익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이 자꾸 후보 간 대립 구도만 부각시키다 보니 후보들조차 거기에 매몰되고 있습니다. 정작 당원들이 듣고 싶은 얘기에는 답이 없습니다. 비전과 전략이 부재한 채, 후보별 흠결만 들춰 치고받는 전당대회는 안 됩니다.
민주당의 성격
민주당이 야당이 되고 나서 2008년 말경부터 당의 진로와 성격을 놓고 ‘반대야당’으로 갈 것이냐, ‘대안정당’을 지향할 것이냐는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촛불시위가 그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원래 대선 직후 민주당은 패배의 원인을 평가하면서 대안정당 지향성이 강했습니다. 열린우리당 당시의 정치적 급진성과 사회경제적 무능이 패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집권 초반부터 폭압적 본성을 거침없이 드러냈습니다.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저항했고 용산참사를 겪고는 야당에게도 불퇴전의 각오로 투쟁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강력한 반대야당이 되지 못할 거면 차라리 없어져 버리는 게 한국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투쟁력을 강조하는 반대야당론과 정책 능력을 중시하는 대안정당론은 이념 지향에서도 나뉘게 됩니다. 반대야당론은 당의 진보적 색채 강화를 요구했습니다. 반면 대안정당론은 당의 살 길이 중도화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명박 정권 초반 2년 반은 민주당에게 이 노선 간의 대립 혹은 혼재 기간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기간 동안 당은 외형적 행동으로는 반대야당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촛불시위부터 MB악법 저지 투쟁, 그리고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비통한 죽음까지 야당은 싸움판에 내던져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내면적 지향으로는 대안정당이었습니다. ‘뉴민주당 플랜’이 그 대표적 증거입니다. 이 플랜은 클린턴 때의 ‘해밀턴 프로젝트’와 비슷한 것으로 성장과 복지의 동시적 추구가 핵심입니다.
그렇게 지나 온 2년 반 위에 앞으로의 2년 반이 놓여 있습니다. 후보들은 우선 자신이 앞으로 대안정당을 지향할 것인지, 반대야당을 더 투철히 수행할 것인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당원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합정치
두 번째로는 연합정치에 대해 당 지도부가 되고자 하는 후보들이 발언해야 합니다. 대개 진보진영과 연합해야 한다는 원칙에 다들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연합정치를 논한다는 것은 결국 민주당에서 대선 후보를 내고 그 대신 무언가를 대선 전에 연합세력에게 양보하고 나누어야 한다는 정도는 당원들도 금방 압니다. 진보정당의 의석 확대를 가져올 독일식 선거제도의 전면 도입이 됐든, 진보진영이 원하는 선거구에서의 과감한 공천권 양보가 됐든 지금부터 공론에 부쳐야 합니다. 민주당 당원들은 DJP연합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지켜본 분들입니다. DJ처럼 강력한 헤게모니를 갖춘 리더가 없는 민주당의 현재 조건에서 전당대회 같이 전당원의 이목이 집중한 장에서 공개적인 논의와 의견 수렴을 도모하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당 대표가 된들 무엇 하나 제대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민주당의 당원 중엔 386 운동권 세대 출신들이 많습니다. 이념으로만 보면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에 가 있어야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고, 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진보정당이나 시민사회에 여전히 넓은 네트워크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당에서 연합정치를 논하는 데 단순히 ‘연합해야 한다.’는 당위론 정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자신이 당 지도부가 되면 당장 어떤 원칙과 수순을 갖고 어디부터 먼저, 어떤 의제를 통해 연합해나갈 건지 구체적인 얘길 내놓아야 합니다.
당원들은 ‘빅텐트’론부터 시작해서 국민참여당과의 관계 재설정 문제,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노당과 이뤘던 선거연합에 대한 평가, 진보진영에서 논의되는 先 진보연합론에 대한 입장 등 차기 당 지도부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고 알아들을 능력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다지 내용 있는 발언이 없습니다. 있어도 말 안하는 건지, 아예 막연한 건진 모르겠지만 당원들의 수준과 기대를 생각한다면 이번 전당대회의 의제 중에 하나로 다루는 것이 마땅합니다.
집단지도력
궁극적으로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전략과 비전을 후보들은 제시해야 합니다. 당을 어떤 모습으로 어떤 내용으로 변화시킬 건지, 어떤 정책을 중심으로 하여 승부수를 띄울 건지, 시민사회와의 유기적 관계를 어떻게 회복시킬 건지, 좋은 후보들을 출마시키기 위해 공천 제도는 어떻게 정비할 건지 등등을 말해야 합니다.
대선은 2012년 겨울이지만, 총선이 같은 해 봄에 있습니다. 그 얘긴즉, 2012년 봄이 오기 전인 2011년 겨울에는 준비가 다 끝나야 한다는 겁니다. 범민주진보진영의 단결 여부도 총선 전에 결론이 나야 합니다.
지금 당원들은 새로 뽑힌 당 지도부가 당선된 다음 날부터 대권 주자 행보를 흉내 내며 자기 정치하는 데 바빠, 정작 당 일은 서로 책임을 떠넘긴 채 티격태격하지 않을까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금 후보 대부분이 다만 등수가 다를 뿐이지 모두 지도부가 된다는 건 기정사실입니다. 당원들이 왜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했는지 후보들은 알아야 합니다.
집단지도체제를 통해 민주당의 베스트 멤버들로 팀을 구성하자는 겁니다. 하나 가지고는 왠지 약해 보이니 팀으로 조직력을 발휘해 한나라당 진영을 휘저어 달라는 게 당원들의 정확한 현실 진단과 전략입니다. 한국 축구가 그렇듯이, 패스 안 하고 단독 드리블이나 하면서 상대 골문 앞에서 어정거리느라 수비에 가담 안 해주는 선수는 퇴출 대상 1호가 될 겁니다.
후보들부터가 전당대회의 이슈를 이런 의제들로 끌어가야 합니다. 그게 없으니 누가 누구의 약점을 공격했다느니, 누구와 편이 갈리고 누구와 짝짓기 할 것 같다는 보도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당원들이 궁금한 건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후보들만 자신의 약점 때문에 속앓이 하는 게 아닙니다. 후보들을 바라보는 당원들이 더 걱정이고 고민입니다. 지금 강력한 대권 주자가 없다는 게 당원들의 제일 큰 걱정 아닙니까?
피차 약점은 당원들이 다 아는 얘기고, 들을 때마다 우울해질 뿐입니다. 우울을 희망으로 바꾸고, 약점을 팀으로 뭉쳐 강점으로 바꿔 달라는 게 당원들의 충정인데, 그걸 왜 후보들만 모르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본격화된 선거전에서 앞으로는 정말 우리 당에 필요한 얘기, 당원들이 듣고 싶어 목이 빠질 지경인 이야기들을 후보들이 시원시원하게 해줬으면 합니다.
모든 후보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